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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새 여자와 산다!
작성자 정광설 작성일시 2012-11-20


고등학교 시절 보았던 바렌이란 영화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백인과 에스키모 인들의 문화가 다른 점을 부각시키는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에스키모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추운 동네에 와서 좋은 일하던 선교사를 대접하기 위해,
자신에게 있는 가장 귀한 존재인 아내를 손님대접으로 잠자리에 들이려고 하자 기겁을 하며 거절하는 백인 선교사에게,

자신의 호의를 무시하는 그 백인 선교사의 무례를 탓하며,
연장은 빌려주면 고장나서 돌아오고, 도끼는 빌려갔다간 자루를 부러뜨려 가져오기 싶상이지만,
"아내는 늘 새롭다!"라고 소리치며 선교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왜 자신의 호의를 몰라주냐고,
이미 이글루 벽에 부딪쳐 뒷머리가 깨져 죽은 선교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부르짇던,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명 배우 안소니 퀸이,
"아니 당신 지금 죽은거야? 이깟 얼음 벽에 부딪쳐 깨져 버릴 정도의 나약한머리였어?
난 잘못없어. 내가 죽인게 아니고 당신이 내호의를 무시하는 바람에 벌 받아 죽은거야!"하고 울부짖으며,

자신들은 흔히 싸우거나 장나칠 때 상대의 목덜미를 잡아 이글루 벽에 갖다 박아버리면,
머리통은 멀쩡하고 이글루 벽이 터져나가 나중에 씩씩대며 추운 바깥에 나가 어름 잘라다 보수하곤 하던 것 생각하며,
"이깟 어름에 깨져 버리는 머리통도 있나?"하는 억울함에 치떨며,
살인범으로 몰려 북극의 설원으로 무한정 도망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며 절규하던,
안소니 퀸의 열연장면이 떠오른다.


문득, 그 에스키모인의 "아내는 늘 새롭기 때문에 하루 저녁 당신께 빌려줘도 된다."는 의미와는 다르지만,
"그래 아내는 늘 새롭고, 늘 변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불현듯 웃음짓는 아내의 얼굴에 익숙치 않은 가는 주름이 잡히는 것을 보며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내가 처음 가슴 설레 눈이라도 마주칠라치면 후딱 안본척 눈 돌리고,
혼자서 가슴만 두근대던 때의 아내 모습은 이미 아니고 그때와는 사뭇 다른 여인이 되어,
이제는 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나의 삶을 쥐락펴락하면서,
내 옆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도,
그로인한 아픔에 대해서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채 배실배실 웃고 있는 것이다.

"이런 웃기는 경우도 있을까?"생각하다가,
더 웃기는 것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밉지 않고,
그런 아픔이 기쁨과 감사로 느껴지는 바보가 어느새 되어 있는 나의 모습인 것이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모습이,
그 에스키모의 생각이 어떤 것이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늘 새롭다!"는 그 말 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여인이 늘 내 앞에 아침마다 찾아오는 것같이 느껴진다.

남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이쁘다, 밉다, 늙었다, 젊어 졌다, 뭐라 표현할 지 몰라도,
나는 "늘 새롭다!"라는 표현이 좋다.

이전에 내가 좋아했던 그 아내의 모습도 좋고 그립지만,
그때의 모습이 그녀만의 것이었다면,

지금의 늘 새로운 모습은 그녀의 모습에 나의 삶이 녹아져 들어가 생겨난 모습이니,
이는 그녀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작품이고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이 모습은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고, 평가하고, 선호를 논할 대상이 아니라,
이런 모습일 수 있음을 감사함으로 감당하는 길 밖에 없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고 은총인 것이다.

나의 숨결이 스며들어 있는 그 잔주름과, 나의 속썩임을 감내하며 새겨진 그 변화를,
그리고 이 모든 질곡의 50여년 가까운 세월을 참고 견디며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얻어진 그 굳은 살을,
어찌 거죽의 모습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늘 새로워지는 아내의 모습을 대하며,
새로워진 아내를 맞이함에 "나도 늘 새롭게 단장하고 다가가는 새신랑이어야 하리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항상 새롭고,
항상 감사함으로,
기쁨과 보람을 나눌 수 있는,
둘이 하나됨을 느끼며,
가까워 오는 노년의 삶을 당당히 맞아 나아갈 결심을 다져본다.